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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현실을 왜곡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 감정을 표현하는 바로크미술-스페인 대표 바로크 미술의 대가 벨라스케스에 대하여

바로크의 예술적 표현 양식은 르네상스 이후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서양의 미술, 음악 건축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는 양식의 변천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후기의 바로크 시대는 로코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는 파격적 효과, 감각적 풍요, 생동감 있는 동적 표현, 화려하고 풍부한 장식 등이 주요 특징입니다. 이는 르네상스 양식의 균형과 조화와 반대로 최소한의 질서 안에서 우연과 자유로움이 강조됩니다. 바로크 미술은 역동적인 형태를 포착하는 것과,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데 중점을 둡니다. 이러한 바로크 미술의 시작점은 로마이고, 최초의 바로크 미술가는 카라바조라고 간주되고 있습니다. 

 

-스페인 바로크 예술의 대가, 벨라스케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1599년 세비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아들이 유능한 인재가 되길 바라며 고급교육을 받았고 특별히 언어학과 철학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어딜 가나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 후 미술공부를 시작한 벨라스케스는 세비야의 예술가이자 교사였던 프란시스코 파체코 밑에서 수습생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1618년에는 스승인 파체코의 딸과 결혼하고 두 딸을 낳게 됩니다. 벨라스케스가 스물세 살이 되던 해, 파체코는 마드리드에 방문하라고 조언해 줍니다. 벨라스케스는 고향인 세비야를 떠나 새로운 수도인 마드리드로 향했고 왕이 그가 그린 초상화에 매료되어 그를 궁정 화가로 데려오고자 했습니다. 왕은 궁전 한쪽에 벨라스케스를 위한 작업실을 마련해 주었고 개인 비용을 들여 벨라스케스의 가족을 세비야에서 마드리드로 데려와 후하게 대접해 주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아름다움보다는 진실을 추구했습니다. 따라서 그림에서 보이는 빛과 분위기가 매우 사실적입니다. 아마 조금 더 늦게 태어났다면 그는 인상주의나 사실주의 화가로 불렸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초상화에서는 인물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특히 펠리페 4세와 관련된 작품들이 잘 알려져 있고 마드리드에서 40년 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벨라스케스가 마드리드에서 6년 정도 지냈을 무렵, 플랑드르의 화가 루벤스가 스페인에 방문했고 벨라스케스에게 이탈리아 예술에 대해 들려줍니다. 그 덕에 벨라스케스는 1629년에서 1631년의 1년 반 동안 미술공부와 여행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살게 됩니다. 그는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 티토레토, 파올로 베로네세 작품의 색채를 보면서 감탄했고 로마에 머물며 작품을 연구하고 모사했습니다. 마드리드로 돌아온 벨라스케스는 왕의 어린 아들인 발타자르를 새로운 모델로 삼았습니다. 발타자르가 궁전복을 입은 모습이나 전투와 사냥을 할 때의 모습을 주로 그렸고 열 살짜리 어린 구혼자의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중에는 발타자르가 조랑말 위에 앉아있는 작품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그 외에도 돈 펠리페, 마리아 테레사, 그리고 왕녀인 마가리타의 초상화도 그렸습니다. 그는 왕실의 아이들을 화폭에 담는 것을 좋아했고 이처럼 궁중의 어린아이들을 그리는 사람은 플랑드르의 화가 반 다이크 외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그림의 소재로 종교나 신화보다는 길거리나 선술집의 일상을 묘사하거나 예쁜 꽃 그림을 주로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다 보면 화가보다는 캔버스에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이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궁정의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궁정의 시녀들>

벨라스케스의 작품들은 여러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스페인 프라도 국립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는 작품이 '궁정의 시녀들'입니다. 그림에는 다섯 살 정도 된 왕녀 마가리타가 서 있고, 한 시녀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왕녀에게 물 잔을 건네고 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두 난쟁이가 있고 한쪽에서 벨라스케스는 왕과 왕비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두 사람의 모습이 뒤편 거울에 비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스페인에서 기사작위를 상징하는데 왕은 완성된 그림을 보고 그림 속 벨라스케스의 가슴에 '산티아고의 십자가'를 그려 넣었습니다. 십자가는 여전히 벨라스케스의 가슴에서 붉은빛을 내고 있고, 이 작품은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브레다의 항복'

디에고 벨라스케스, <브레다의 항복>

이 작품은 왕의 별궁의 큰 홀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전승화로 세계적인 역사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림에는 스페인과 네덜란드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의 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은 벨라스케스가 이탈리아로 가는 여정 중에 그를 수행하던 스피놀라 후작이 들려준 이야기로 배경에는 네덜란드의 마을 브레다가 펼쳐져 있고 멀리 운하와 군대 천막들이 보입니다. 앞에는 네덜란드 군대가 항복하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고 스페인 군대 쪽을 보면 긴 창이 숲을 이루고 이 군대의 대장인 스피놀라가 앞에 서 있습니다. 반대편의 네덜란드 군대는 장교인 낫소의 율리안이 보이고 그는 정복자 앞에 몸을 숙이며 요새의 열쇠를 건네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전승화에서 패군의 장군은 지면에 무릎을 꿇고 승자는 말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가 보통이지만, 이 그림은 패자 율리안과 승자 스피놀라가 같은 지면에서 대등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는 스피놀라가 패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말에서 내린 것을 알려주고 승자의 관대함을 강조한 표현은 스페인의 기사도 정신의 승리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도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