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사에서 미술은 서예 같은 다른 시각예술이나, 궁궐, 한옥 같은 건축 예술, 시조, 향가와 같은 문학예술, 판소리, 탈춤과 같은 공연 예술과 연관을 맺으며 발전해 왔다. 이후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양회와, 사진, 영화 등이 들어왔다. 광복 이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방송이 시작되었고, 이에 대응해 현대미술계에서는 비디오아트가 시도되었다. 8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 등의 신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미디어아트가 소개되기 시작한다.
조선시대에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조선 양반들은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했다. 국가적으로는 삼강행실도 같이 유교의 이념은 강조하는 서적이 출판되어 보급되었고,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 각종 예법 등이 의궤 같은 기록으로 남겨지기 시작하였다. 불교는 왕비나 사대부 여인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성행하였지만, 더 이상 불교는 고려시대처럼 귀족적이고 화려한 모습을 띠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찰도 점차 도시보다 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불화양식은 점차 도식화되기 시작하였으며, 무속신앙을 받아들여 화려한 색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칠성당 같은 무속 신들이 사찰에 봉안되기도 한다. 미술에서는 화려한 불화보다 중국의 유학자들이 선호한 문인화의 영향이 강해졌고 그 결과 조선에서도 화려한 채색화보다는 수묵화가 많이 그려졌다. 양반 사대부 사이에서는 사군자나 산수화가 유행하였다. 소재는 유교의 주요 이야기나, 도가의 이야기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 회화가 중국 산수화 기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보여준다. 바위의 모습은 한반도에 없는 모습으로 도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소재 면에서는 도원경을 소재로 하였다. 화려한 채색화를 배제하는 경향은 특히 명나라 동기창의 남북종론에 따라 더욱 두드러졌다. 동기창은 채색화를 북종화로, 수묵화를 남종화로 나누고 남종화만 권장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아직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는 경향이 심화되지는 않았다. 비록 여성이 자유롭게 집 밖으로 나다니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신사임당 같은 여성 화가들은 초충도 등을 그려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성리학적 이념은 점차 강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고려시대와는 다른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런 가운데 영조와 정조가 집권한 시기에 조선 문화는 짧은 중흥기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에 정선은 옛 중국 그림을 모방해 도식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치를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김홍도는 당시 서민들의 풍속을 익살스러운 필 채로 그림에 담았다. 신윤복은 당시 양반 사대부들의 향락 생활을 화폭에 담아냈다. 이외에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민화가 발달하기도 하였다. 도자기를 보면 조선 전기에는 주로 분청사기가 만들어지다가 후기로 갈수록 백자 중심으로 바뀌었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는 점차 서양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서양 회화와 사진이 이 시기에 들어온 것이다. 동시에 고휘동 등의 화가들이 일본 등으로 유학을 가서 서양 회화를 배워오기 시작하였다. 유학생들 중 일부는 일본 유학 과정에서 서양의 모더니즘 미술을 접했으며 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모더니즘 미술이 한국에 유입되었다. 모더니즘 미술을 하기 시작한 미술가들의 경우 외국에서 순차적으로 발전한 사조들을 맥락을 따져가며 들여온 것이 아니라 인상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 여러 사조들을 동시에 들여와서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그 사조의 원해 의도까지 따르는 경우보다, 외형상 보이는 양식을 따라 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최초의 영화가 들어오고 전통미술 쪽에서는 조석진, 안중식, 이상번, 김은호 등이 이름을 떨쳤다. 서양 회화 쪽으로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이 조각에서는 김복진 등이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 활동한 미술가들과 미술협회 상당수는 친일 행위에 가담했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된 문화, 예술계 인사는 총 6명이며, 이들 중 미술계 인사는 김은호와 심형구 두 명이다. 김은호는 조선 미술가협회 일본화부 평의원과 바도 총후미술전 일본화부 심사위원이었고, 심형구는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과 조선 미술가협회 서양화부 이사였다. 대한민국에서는 전통미술보다는 서양미술이 서양미술보다는 상업미술이 더 크게 발전하였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미술은 순수미술 분야든 상업미술 분야든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일본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으며, 프랑스, 독일, 영국 국가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해방 이후의 모더니즘은 그 이전의 모더니즘과 향토성에서 차별된다. 향토성이라는 주제는 이미 일제 강점기 때 선전체제에서도 심사위원들이 심사 기준으로 삼았던 중요한 주제였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의 향토성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원시주의나 미개함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해방 이후 예술가들은 '서양의 기법과 한국의 전통을 동시에 계승한다'라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향토성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예술가들은 작품에 해학성을 반영하거나, 혹은 민속적인 소재를 찾아 표현하려 하였다. 이후 한국 모더니즘 미술은 근대화와 한국적 정체성, 이 두 가치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율하는 모습을 보인다. 1970년대에 들어서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의 주류를 차지한 것은 모노크롬 회화였다. 서구의 기준 특히 클레멘트 르린버그의 '회화의 자율성' 개념에 맞추어 본다면, 한국의 모더니즘은 1970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미술계 내부 사정을 보면, 모노크롬 회화는 1950년대부터 계속된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 대한 반발이었다. 국전 체제하의 미술가들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리얼리즘 미술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에 대한 반대로 추상 미술 운동이 시작되고 모노크롬 회화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추상 미술은 부작용을 낳았는데, 순수하게 미술의 조형 언어만 사용해 작업하려 하자 미술계는 군사정권 시대에 벌어졌던 현실사회 문제와 동떨어져 버리게 되었다. 대중은 추상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대신 영화, 방송, 광고 같은 상업 미술과 각종 스포츠 중계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일부 작가들은 이 시기 군사정권의 요구에 못 이겨 예술적 신념을 꺾고 역사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 들어 한국 미술계 일각에서는 모노크롬이라는 과거 명칭을 버리고 '단색화'라고 새롭게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1980년대 등장한 민중미술은 이런 모노크롬 중심의 미술계와 당대 사회 현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민중미술은 모노크롬 회화가 고수했던 형식적인 경향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에 반발했으며, 미술이 사회의 일부로서 삶의 현장에 가까워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80년대 초 '현실과 발언 계기로 민중미술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 시기에 활발히 활동한 민중 미술가는 신학철, 임옥상, 안창홍, 오윤 등이 있다. 민중미술은 추상에서 다시 구상화로 복귀했고, 탈 모더니즘의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미술 그 자체의 형식과 내용을 보면 미국의 벤 샨이나 레지날드 마쉬와 유사한 사회적 사실주의 경향에 더 가까웠다. 서구의 기준으로 한국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포스트모더니즘이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화 정권이 자리를 잡으면서 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고 인터넷이 보급된다. 이와 함께 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경향이 한국 미술계로 들어오게 된다. 이에 따라 점차 개념미술을 시도하는 작가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미 1980년대부터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승택 등의 행위예술 작가들은 이런 작업을 시도하고 있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신기술의 영향을 받은 미디어 아트 역시 한국미술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백남준이 점차 비디오아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국내 미술계에도 백남준의 작업이 소개되고 이와 유사한 시도를 하려는 작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내에서 비디오아트를 시도한 작가로는 박현기가 있다. 이루 미디어아트의 영향이 강해지면서 한국미술은 점차 혼성예술, 종합 예술화 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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