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란 붓으로 글씨를 쓰는 예술을 말하는데 중국에서 발생한 예술형식의 하나로서 한국 및 일본에 전래되어 한자뿐만 아니라 해당 나라의 글씨체를 예술적으로 종이 위에 표현하는 기술적 측면을 넘어 정신 수양의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서도라고도 한다. 서예의 미의식에 대해 알아보자. 서예가가 쓴 글씨가 타인에게는 읽지 못하는 제멋대로의 자의적인 자태일지 모르나 그 서예가에게는 읽는 문자로서 미의식 표현의 서사이다. 서의 조형적 요소로서 형태와 선질 따위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표현에 있어서 깊은 관련이 있다. 그 형태는 서체 또는 서풍에 의한 정도로서 제약받는 것이고, 서의 선질은 서예가의 주간을 어느 정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서예는 선의 예술이다. 따라서 서의 선은 회화의 선과 같이 어느 물체의 형상을 표현하는 윤곽선이 아니고 비구상적인 선이다. 물론 사출 된 선에 의해서 문자의 자형이 표시되나 그것이 서선의 본질은 아니다. 서선은 부호로서 읽는 형의 선이 아니고 내용 있는 선, 미의 선, 인간의 생명이 통하는 선이다. 이것은 구상성을 떠난 선으로 붓의 압력과 속도로서 사출 된 서예가를 상징하는 선이다. 즉 물체의 형태 또는 대상의 연관성을 그리는 선이 아니고, 인간성과 연관성이 깊은 선이다. 옛날부터 현재까지 서를 심화라고 한 것은 이 특질 있는 선질 표현의 기초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의 형태미 이상으로 서의 본질을 형성하고 있다. 서예의 심오한 뜻은 기법의 연습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기법과 병행해서 정신 수련을 중요시한다. 중국에서 서는 육예, 즉 예, 악, 사, 어, 서, 수 중의 일부분으로 인간의 선행 수련이다. 고상한 사군자 수업의 도로서 많은 위인이 생애를 바쳐서 서로 이어서 발전시켜 왔다. 서예는 실용적인 요구와 서예적 만족에만 그치는 것이 이라 참다운 인간의 영원성을 추구하는 도로서 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열렬히 요구되어 있다. 따라서 서예의 근본정신이 동양 일반의 예도에 통하는 자연관을 기조로 한 것이다. 서의 표현 내용은 그 서의 소재와 어구, 시문과 문학적인 요소를 의미하고 있으나 독립된 시각성 예술로 향상되는 한, 서의 내용은 소재로서 문자보다 그 작품에 포함된 서미의 문제점이 생긴다. 따라서 하나의 완성된 작품에는 전체를 구성하는 문자의 크고 작음, 포치, 먹의 윤택과 마름, 낙관의 위치 즉 화면을 사리리기 위한 배치법인 장법이 중요하다. 그 작품에 구성된 문자의 형태미로서 동양 문자는 회화문자에서 발달된 상형문자이며 표의문자이다. 한글은 표음문자로서 한 자 한 구를 형태미로 물체의 모양이나 특성을 잘 알아 표현하는 응물상형 결합체로 표현한다. 유럽인도 상형문자로서 인간 본질을 순화시키는 서예 정신을 배울 수 있다. 고려시대의 서예는 신라시대와 같이 구양순의 이른바 구법이 주류를 이루어 규각이 있으면서 정제 준경한 서체이며 이런 특색 있는 서체를 비문 사경에 사용하고 한편 판각에서는 변화된 서체를 이루어 대장겨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고려체를 이룬다. 말기에 사경에는 당사경체의 여운을 가진 예도 있고 후에 조선시대의 서체가 되는 원의 조맹부체도 있다. 조선시대의 서체는 안진경체의 고려와는 달리 왕희지에서 출발하는 원나라 말기의 맹부의 서체로서 시종 하였다. 조맹부의 규각이 없는 세련된 서체는 명나라 초기의 문인 학자들 사이에 유행하여 한림원 체라하고 판본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이는 조선에도 자극을 주어 세종 때에 간행된 훈민정음, 삼강행실도 등의 서적에 명초의 서체와 사경에서 느낄 수 있듯이 힘이 들어 있었는데, 초기의 서예를 대표하는 서예가는 안평대군으로서 그의 서풍은 조법을 잘 체득하여 그 연미하고 넉넉한 품이 당시에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초기의 서체는 시대가 내려감에 따라 새로운 자극과 범본이 중국으로부터 끊어짐에 따라 그저 외형만 정비하고 균형미만을 찾는 무기력한 서체로 정형화되어 간다. 중종 때는 김구가 종왕의 서체를 배워 인수체를 새로 시작했고 명종 때의 양사언은 큰 글씨와 초서에 뛰어났다. 선조 때의 한호는 진체의 대가로서 뛰어났고, 이광사 같은 우수한 서예가도 있었으나 한결같이 이들의 서체는 그저 말쑥하고 미끈한 전형적인 조선 서체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19세기에 가서 김정희의 독창적인 서체가 등장하여 일대 혁신을 일으키기지만 그의 추사체는 더 발전이나 계승을 보지 못하고 그 한 사람 대로서 끝난다. 그리고 한글 서체로 궁체라는 서체가 있어 의식적인 등서체와 장식적인 서간체로 구별되는데 이 서체도 시각상의 미 이상의 글씨로서의 골을 갖지 못한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서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예의 서체들은 고문, 예서, 초서, 행서, 해서, 비백이 있는데 고문은 전서가 성립된 이 전의 서체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인 귀갑수골문을 위시하여 은, 주 고동기의 명문 등을 총칭하여 부른다. 허진의 '설문해자' 서의 설면에서는 공자의 벽 중에서 나온 문자를 가리킨다. 신나라 왕망 때에는 대전까지도 고문이라 하였다. 전서 고문의 자체와 서풍이 정리된 것으로 전, 소전의 2종이 있다. 대전은 주문이라고도 불리고 주의 사주가 만들었다고도 전해진다. 소전은 대전의 체세를 길게, 점획을 방정하게 하여 서사를 편리하게 한 것으로서 진시황제의 문자통일 때에 승상 이사가 창시하였다고 전해진다. 예서는 소전을 직선적으로 간략화한 것으로서 하급 관리인 도례 사이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예서라 부르고 있다. 이것이 모체가 되어 해행초의 삼체가 전개된다. 초서는 문자를 흘려서 쓴 서체로서 서역에서 출토된 전한의 목간에 팔부와 파세와 리듬을 가진 속필의 문자가 있고, 이로부터 지금의 초서로 진전되었다고 알려진다. 읽는 게 어려워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변화가 풍부하기 때문에 예술작품에 많이 쓰인다. 행서는 행압서 라고 하고 해서와 초서의 중간 서체이다. 한 대의 목간에 오랜 예가 있고 역시 예서의 속필로서 발생했다. 행압서란 교환하는 문서란 의미인데 행서는 빨리 써지고 읽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해서는 예서에서 변이 된 것으로서 필획에 생략이 없는 서체이다. 다른 서체보다 발생단계로서는 가장 늦게 성립되었는데 실용이라기보단 의식적인 정제함을 요구해서 생긴 것이라 하겠다. 정서, 진서라고도 하며 현재 일반적으로 쓰고 있어 활자체에도 활용되고 있다. 비백은 후한의 채옹이 좌관이 솔로 글자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 고안했다고 한다. 따라서 본래 예서에서 필획 속에 스치듯이 비치는 수법을 많이 내 쓰는 기교를 특색으로 한다. 당시엔 궁전의 액자에 사용된다. 예서체는 아니지만 당비나 공해의 글씨에 비백의 유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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